1. 2023 김동률 콘서트, 티켓 예매에 성공했다. 4년 만의 콘서트, 하늘이 도와서 로얄석 예매에 성공했다. 6만명 중에 대략 1000명 안에 든 것 같다. 초심자의 행운이다. 인기 콘서트를 처음 예매해보는데 맨 앞 구역에 배정된 것은 행운이다. 2. 내 김동률의 시작은 나는 전람회 세대는 아니다. 처음 접한 그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서 접한 샌님의 이미지. 내 최애곡은 아니었다. 그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염세주의에 빠진 학생에 불과했으므로 회상과 고민마저도 정제되어있는 그의 가사와 음악이 그냥 부질없이 느껴졌었다. 세상은 곧 망할텐데 뭘 말할까 말까를 고민할 것이며 내 마음 속에 요동치는 흑염룡을 그가 대변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여러 곡들에서 나온 그의 긍정적 위로들이 그냥 어줍잖..
어려서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구속은 일신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고, 보통 내가 아는 구속은 수갑을 차는 것인데 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래서 구속이라는 것의 함의를 탐구하길 포기했던 기억이 나고, 가사에서 구속을 언급하진 않으니까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나보다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휴일에 해야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만약 그 노래가 요즘 나왔더라면 삶의 고단함과 허무함에 대해서 더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당시에는 그냥 으레 누구나 겪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노랫말 정도로 다른 이들도 이해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그 의미가 좀 더 다르게 다가온다. 이제는 구속이 아름다울정도로 사랑의 연결됨이 좋나보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밭 부레옥잠같은 이정표없는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서 삶의..
아련함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똑똑히 분간하기 힘들게 아렴풋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분간하기 힘든건 그냥 잘 안보인다고 하고 상기한 표현은 보통 기억에서 쓴다. 나에게 아련함이라는 것은 무척 낭만적으로 들리는 단어다. 그런데 왜 생각날 듯 말 듯 한 것이 낭만적으로 취급되는가. 그냥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 것이 낭만과 동치되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이런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는 그것이 처음 듣는 것일지라도 괜히 아련한 느낌을 받는다. 무척 추상적이고 때로는 당황스러운 감정이다. 그런 속성을 가진 음악의 정체를 생각해봤다. 현란한 음악은 분명히 아니다. 아니 현란하긴 해도 좀 우울한 음악이고, 옛날 음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향이나 과거에 대한 아련함일..
학교에서는 으레 축제라는 것을 한다. 코로나로 한동안 개최되지 못했던 축제는 개최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재능을 뽐내고 인기를 얻고 박수를 받는 것은 인간의 DNA에 내재된 뽕이다. 자기 표현 본능에 따라서만 축제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표현만으로 만족할 것 같으면 굳이 무대에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마약류가 그러하듯 박수로 얻는 뽕 역시 위험부담이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예상대로 자기를 무지하게 드러내고 싶어하거나 뽕이 가진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 두 종류의 학생들이 무대를 신청했다. 중요한건 그들 중에 특수아가 한 명 있다는 것. 참가자가 많아 오디션을 하였고 예상대로 특수아의 노래는 음정이 반 이상 틀리는, 잘 부른다고는..
개인적 영감으로 예술은 만들어진다. 영감은 감정에서 오고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기능이 감정이므로 비슷한 감정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끝끝내 찾아내서 긷어 올리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공감과 때때로 추앙을 받는다. 추앙받는다고 위대한 것은 아니다. 예술이 위대해 지려면 공감을 넘어 시대를 관통했다는 느낌이 필요할터 예술가가 시간여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인간을 굽어 살피고, 애정을 가질 때 수많은 공감들을 관통하는 시대의 에센스 한방울 넣을 수 있는 것 아닐지
음악을 듣다보면 백그라운드 신스가 들릴 때가 있다. 아... 원래 이런 소리였구나 하면서... 희미한 백그라운드 신스는 음악 볼륨을 크게 올려도 아무때나 들리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불건강할 때에는 안들린다. 그리고 아무리 집중해도 처음 듣는 노래에선 들리진 않는다. 이제 창작자가 보이고, 비로소 한땀한땀 작업실이 보인다. 아마 며칠 째 밖에도 못나왔겠지. 볶음밥을 몇 번이나 시켜먹었을까. 갈급하고 먹고 살기 팍팍해질 때 좋은 창작이 나온다지만 평범한 개인에게 그것은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상처받은 예술로부터 인간은 위로받아야 한다지만 일부러 생채기를 낸 것 같은 창작자가 만든 음악은 감동을 줄 수 없다. 결점이 많은 낙오자일수록 감동은 커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백그라운드 신스가 들리면 연민이 피어오르고 ..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 따라서 정서적 교감행사가 없다. 하지만 외물과 물리적 교감은 가능하며 외물로부터 오는 느낌은 정서적인 교감으로 치환된다. 밖으로 나간다. 날이 많이 더운데, 오늘은 휴일이고, 땀을 좀 흘릴 작정으로 나왔다. 집에 에어컨을 22도쯤으로 맞추고 나간다. 문득 어제 보았던 섭씨의 기원이 셀시우스씨를 한자화한 것이라는 사실이 떠오르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문을 나서려다 멈칫한다. 땀을 흘리는 것을 불쾌해해서는 좋은 산책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날씨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야겠다. 2번 정도 집에서 입다가 어제 세탁물통에 던져놓은, 스포츠 반팔티를 들어 냄새를 맡아본다. 누굴 만날 것도 아니고, 일단 빨아야되서 세탁물통에 넣은게 아니라 빨때가 되서 세탁물통에 넣은 티셔츠이므로 입고 나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