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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된 일기장

부끄러움에 대하여

선무당 2023. 3. 4. 18:34

  학교에서는 으레 축제라는 것을 한다. 코로나로 한동안 개최되지 못했던 축제는 개최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재능을 뽐내고 인기를 얻고 박수를 받는 것은 인간의 DNA에 내재된 뽕이다. 자기 표현 본능에 따라서만 축제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표현만으로 만족할 것 같으면 굳이 무대에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마약류가 그러하듯 박수로 얻는 뽕 역시 위험부담이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예상대로 자기를 무지하게 드러내고 싶어하거나 뽕이 가진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 두 종류의 학생들이 무대를 신청했다. 중요한건 그들 중에 특수아가 한 명 있다는 것. 참가자가 많아 오디션을 하였고 예상대로 특수아의 노래는 음정이 반 이상 틀리는, 잘 부른다고는 부모님 밖에 이야기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탈락시키진 못했다. 부담스럽지만 교육기관이 짊어져야 할 우리 사회의 역할이라는 암묵적인 정서가 있기에, 또한 거절한 명분을 찾지 못했기에, 마지막으로 "축제는 화합의 장"이라는 그 폭력적인 명제에 걸맞는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그 학생의 공연 순서를 정해주고 말았다.

 

  그 날부터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특수아를 비웃을 철없는 학생들에게 가장 나이스한 것 같은 모습으로 일침을 해줘야 하는지... 하필 빌린 공연 공간이 무지하게 그럴싸했다. 순진한 믿음으로 무대에 올라간 특수아가 보호자도 없이 다수의 관객들에게 십자포화를 맞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 속이 상한다.

 

  그러나 쿨한 척 오지면서 할 수 있을만한 교육적인 어떠한 말도 찾지 못했다. 축제를 무마시키기엔 너무 멀리 왔기에 종국에는 그냥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그냥 내 새끼도 아닌데, 어차피 사회에서 받을 부정적인 시선에 장애인도 익숙해질 필요도 있다는, 다소 구역질나는 이유로 합리화를 한다.

 

  축제날. 강당에 앉아서 몇 가지 공연에 대강 박수를 치고 나면 특수아 학생이 무대에 오를 것이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최신 아이돌 걸그룹 노래다. MR도 신경써서 준비한 것 같아 벌써 슬프다. 차라리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래면 대강 눈 딱 감고 조금만 견디면 될 것을... 분명히 청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데 저렇게까지 왜곡해서 사운드를 만들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노래는 이미 불러졌고, 누군가 그 학생이 상처받지 않도록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나는 짐짓 근엄한 척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제는 간주 부분이었다. 관객석을 보면서 서있는 내가 무색하게 시작 때보다 박수소리가 더 크다. 학교에서 목소리 깨나 낸다는 학생들은 호응을 유도하면서 환호성을 내었다. 노래가 끝날 때는 박수 소리가 더 컸다. 그렇게 아무 문제 없이 무대는 끝이 났고, 학생은 무대를 내려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른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애들이 그래도 착하네요. 오 그러네요 너무 다행이에요.

 

  안도감과 학생들에 대한 감탄을 제목으로 그 사건은 그렇게 내 머릿 속에 저장되었다. 그런데 애매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아있다. 결국 내가 느꼈던 찌릿함에 대한 해석을 다시 해야한다.

 

  사건의 제목은 안도와 감탄이 아니라 당혹이 맞다. 우뢰와 같은 박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순수한 학생에 대한 미안함, 부끄러움이다. 역할, 나이를 고려했을 때는 정말 개쪽팔린 것이 맞다. 인간 일반에 대한 신뢰 부족이나 미성숙한 학생들에 대한 기대감의 결핍 때문이 아니다. 그냥 나는 특수아가 섞인 세상은 배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아직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이 배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고 여기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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