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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련함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똑똑히 분간하기 힘들게 아렴풋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분간하기 힘든건 그냥 잘 안보인다고 하고 상기한 표현은 보통 기억에서 쓴다. 나에게 아련함이라는 것은 무척 낭만적으로 들리는 단어다. 그런데 왜 생각날 듯 말 듯 한 것이 낭만적으로 취급되는가. 그냥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 것이 낭만과 동치되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이런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는 그것이 처음 듣는 것일지라도 괜히 아련한 느낌을 받는다. 무척 추상적이고 때로는 당황스러운 감정이다. 그런 속성을 가진 음악의 정체를 생각해봤다. 현란한 음악은 분명히 아니다. 아니 현란하긴 해도 좀 우울한 음악이고, 옛날 음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향이나 과거에 대한 아련함일까? 이제 고향에 가는 것이 이북이 아닌 이상에야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기에 향수(鄕愁)는 나에게 물리적인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교포도 아니고, 또 한가로이 풀 뜯는 황소가 떠오를 나이도 아니고 국악이나 판소리를 듣고 눈물 흘리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한물간 가수들이 모여서 이벤트 앨범을 내거나 공연을 하는 것을 볼 때, 어린 시절 좋아했던 가수를 보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것.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나에게 아련함이란 그것보다 범주가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의 속성은 비슷하지만 이유가 과거에 대한 그리움만은 분명히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젊음,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 정도로 퉁쳐도 되건만 이건 그렇게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그립긴 그리운데, 뭔가 괜시리 떠난 곳 없이 떠난 것 같은 외로움, 잃은 것이 없지만 잃은 듯한 상실감 혹은 잊어버린 무언가. 댄스 음악을 들어도 아련한 댄스 음악이 있고, 슬픈 발라드를 들어도 하나도 안 아련할 때도 있다. 우울감이나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음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음계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슬프다고 다 아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정의내리기도 어렵다.

 

  나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음악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상실감 또는 향수 또는 우울감, 그러면서 쓸데없이 밝은 척하는 현대인같은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음악.

 

  아마 아저씨들은 떠나간 여인을 생각하게 하는 일렉기타가 울어제끼는 음악을 아련하다 표현할 지 모르지만 그건 좀 노골적이다. 추석 개봉 가족 영화처럼 안울면 주인공을 패서라도 결국 관객을 울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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