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으레 축제라는 것을 한다. 코로나로 한동안 개최되지 못했던 축제는 개최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재능을 뽐내고 인기를 얻고 박수를 받는 것은 인간의 DNA에 내재된 뽕이다. 자기 표현 본능에 따라서만 축제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표현만으로 만족할 것 같으면 굳이 무대에서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마약류가 그러하듯 박수로 얻는 뽕 역시 위험부담이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예상대로 자기를 무지하게 드러내고 싶어하거나 뽕이 가진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 두 종류의 학생들이 무대를 신청했다. 중요한건 그들 중에 특수아가 한 명 있다는 것. 참가자가 많아 오디션을 하였고 예상대로 특수아의 노래는 음정이 반 이상 틀리는, 잘 부른다고는..
개인적 영감으로 예술은 만들어진다. 영감은 감정에서 오고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기능이 감정이므로 비슷한 감정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끝끝내 찾아내서 긷어 올리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공감과 때때로 추앙을 받는다. 추앙받는다고 위대한 것은 아니다. 예술이 위대해 지려면 공감을 넘어 시대를 관통했다는 느낌이 필요할터 예술가가 시간여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인간을 굽어 살피고, 애정을 가질 때 수많은 공감들을 관통하는 시대의 에센스 한방울 넣을 수 있는 것 아닐지
음악을 듣다보면 백그라운드 신스가 들릴 때가 있다. 아... 원래 이런 소리였구나 하면서... 희미한 백그라운드 신스는 음악 볼륨을 크게 올려도 아무때나 들리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불건강할 때에는 안들린다. 그리고 아무리 집중해도 처음 듣는 노래에선 들리진 않는다. 이제 창작자가 보이고, 비로소 한땀한땀 작업실이 보인다. 아마 며칠 째 밖에도 못나왔겠지. 볶음밥을 몇 번이나 시켜먹었을까. 갈급하고 먹고 살기 팍팍해질 때 좋은 창작이 나온다지만 평범한 개인에게 그것은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상처받은 예술로부터 인간은 위로받아야 한다지만 일부러 생채기를 낸 것 같은 창작자가 만든 음악은 감동을 줄 수 없다. 결점이 많은 낙오자일수록 감동은 커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백그라운드 신스가 들리면 연민이 피어오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