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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치워진 쓸쓸한 방

선무당 2021. 7. 14. 20:00



내일 면접이다. 1시, 호두는 잠들지 못한다.
그는 스마트폰 속 인터넷을 손으로 훑는다. 잠이 오지 않아 딱히 괴로운 것은 아니다. 계약직 면접이라고 자책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고뇌하는 척 한다.
잠들 사람의 자세가 안되어있다. 고시공부 8년, 호두는 이제 실패가 괴롭지 않고, 살아나가는 게 괴롭다.

호두에게 전화가 걸려오면서 스마트폰 화면은 바뀐다. 바로 받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는 이 시간에 그에게만 전화를 한다. 통화버튼 위에 손가락을 띄운 채로 생각에 잠긴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 그는 잠들었다가 깬 것으로 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타지에 계신 엄마의 잘 치워진 쓸쓸한 방에 생각이 이르자 전화를 받는다.

“응… 엄마”
“아들, 자다가 깼어? 엄마가 미안하네. 근데 몇 시쯤 됐지?”
“1시 좀 넘었지.”
“아이고 우리 아들 잠들어야 하는 시간인데, 이 시간에 네 형한테 걸겠냐, 누나한테 걸겠냐,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
“어… 술 좀 마셨네, 엄마.”
“응! 오늘 엄마가 한 잔했지… 후… 엄마가 좀 슬퍼가지고…”

엄마의 목메일 것 같은 소리가 들리자 호두는 말을 끊어버린다.

“엄마 거기도 날씨가 습한가? 여기는 장난 아니야.”
“어? 날씨? 여기도 진짜 습해.”

화제가 돌아갔음에 안도하는 호두. 그러나 몇 번의 대화 끝에 더 이상 화제를 돌리지 못하고, 엄마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게 된다.
가족 걱정, 형에 대한 서운함, 돈 걱정들…
전화를 끊고 난 후 호두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진절머리라는 단어에 죄의식을 느낀다.

고민을 받아낼만한 인간은 평범한 사회인이어야 함을 생각하고,
왜 답이 없는 문제를 울음과 쏟아내어 면접 전 날에 팔딱거리게 만드는가 생각한다.
결코 계약직 면접이기 때문에, 고시에 실패했기 때문에 팔딱거리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를 탓하랴 고매한 척하며 생각을 멈추고자 한다.

그러다 타지에 계신 엄마의 잘 치워진 쓸쓸한 방에 생각이 이르자 그도 결국 울고만다.
아니, 울어도 될 상황임을 생각만 한다. 이젠 그의 울음은 그도 들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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